[뉴스메거진]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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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치현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5-31 12:24 조회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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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곳

 

 

뉴스메거진 2013년 9월호 

이OO 기자 

 

올 여름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한반도의 기후는 지금까지의 기상 공식에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환경 문제나 양극화 현상 같은 지구촌 거대 담론을 접어 두고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이라는 땅의 일과는 무관한 주제를 내걸고 집회를 하는 곳이 있다. 37년째 매년 두 번의 집회를 개최하면서 끊임없이 말씀을 공급하는 이현래 목사와 소백산에서 열리는 대구교회 여름 집회를 찾아갔다.

 

대구 교회는 197730여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이현래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처음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신부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라.”(5:26)는 말씀 앞에 부딪혔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주님 자신이 깨끗케 하시고 단장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것은 다 헛된 것임을 알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한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한 길을 걸어왔다. 현재 대구교회는 한국 전역과 미주, 일본, 중국 등 여러 곳에서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회들이 새 순이 돋듯이 나타나고 있다. 제도나 조직에 의한 확산이 아니라 생명의 물길처럼 흘러 나가는 대구교회의 생명력이 무엇인가?

 

초기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 희망의 불빛이었지만, 오늘날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구교회는 이 사회에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가? 기대와 의문을 가지고 집회를 살펴보고 이현래 목사께 물음을 던졌다.

 

 

기자: 37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두 차례 이상 집회를 해 왔고 모두 이현래 목사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내셨다면 집회 말씀만 74권이 넘을 텐데 말씀이 끊임없이 나오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 목사: 저는 주님 형상의 아름다움을 본 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산다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살아왔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은 자라서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급한 만큼 교회는 자라고, 교회가 자란 만큼 저는 더 많은 것을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자: 이번 집회의 주제인 신성한 경륜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목사: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하여 한 사회(동산)를 이루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근원, 역사의 두 길을 말합니다. 이 두 길은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 성과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동산을 떠나 자기를 위해 성을 쌓고, 크고 위대하고 높아지기를 추구하다가 바벨탑에 이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듯이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게 되지요. 혼자서 완전해지려 하는 길은 꼭 이 원리와 같습니다. 이 원리로 나가면 계시록 마지막에 무너질 거대한 성 바벨론이 됩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흐르는 강이 있었고, 광야에서는 만나와 깨진 반석에서 솟아난 물이 있었는데 이것은 모두 우리에게 참 양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를 먹고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양식, 관계를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이 양식을 먹은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사회)으로 묘사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로 조성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단장된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기자: '신성한 경륜'이라는 주제가 오늘날 시대적인 물음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는데 무엇을 말씀하려 하신 것인지요? 예를 들면 청년 실업과 사회내의 양극화, 사회 간의 양극화 문제, 환경 파괴와 방사능 문제 등 시급한 문제들이 있는데 왜 신성한 경륜을 주제로 다루시는지요?

 

이 목사: 성경은 인간 문제의 본질을 전혀 다른 데서 찾고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는 수없이 널려져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의 문제는 '관계의 파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왜 단절되었는지를 근원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성경 창세기입니다.

 

계시록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고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더라."는 말씀은 성경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하여 한 장막, 한 사회를 이룰 때 인간의 모든 문제는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기보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문제 자체가 원인무효 되게 하는 것, 이것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신성한 경륜입니다.

 

기자: 혹자는 이 목사님께서 신인합일 사상을 주장한다고 하는데 오해라면 이런 메시지 때문은 아닌가요?

 

이 목사: 저는 메시지는 신인합일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입니다. 늘 강조하는 것이 사람됨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위치에 확고히 서야 하나님과 사람의 교통과 연합이 가능합니다.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합일과 성경에서 말하는 연합의 차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존재적 구분에 있습니다. 동양 종교의 목표는 내 안에 있는 신성을 일깨우고 개발하여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궁극적으로 신성과 합일의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이 되는 길이지요. 이것을 성경의 표현으로 한다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려한 길일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연합은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바울서신의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비유하신 것처럼 농부와 포도나무, 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이 연합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로, 생명을 주신 분 앞에서 아들로, 기다리는 분 앞에서 신부로, 위임을 주신 분 앞에서 종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기자: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점점 아쉬운 것이 없어져 갑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하나님은 물론 친구도 필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지요. 오늘날과 같은 탈종교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번 집회 말씀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 목사: 사람은 매 순간 자기 삶의 결정권을 쥐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출생과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DNA를 규명하고 우주의 기원을 알아낸다 할지라도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으신 이의 목적이 없다면 인간은 우주 안에서 확률에 의해 존재하는 미아와도 같습니다. 목적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가치도 말할 수 없고 허무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이의 목적과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경륜을 알아야 삶을 복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목적을 두셨다는 것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어느 시대에나 삶의 토대와도 같은 문제입니다.

 

기자: 개신교는 수많은 교파가 있는데 대구교회는 어느 교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는지요? 그리고 한국교회 수많은 교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목사: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교파에 속한 분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자신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어떤 교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몸은 나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만 분명하다면 교회는 다양할수록 풍성해 질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가 말한 것처럼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자비를" 가진다면 다툼이나 나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자: 그러면 복음이 무엇이며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목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본질이지요.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고, 십자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정신이며 삶의 원리입니다. 크고 잘나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이고 하나님에 대해 살아 있는 사람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삶은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예수가 우리에게 복된 소식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목적도 방향도 없이 떠도는 인생에게 돌아갈 목표가 되는 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의로움이 있다면 예수 같은 삶이고 진실함이 있다면 예수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와 더불어서라도 복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정신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대답이라 믿으며, 예수의 죽으심을 본받아 사는 것을 일생 푯대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기자: 대구교회의 특성은 무엇이며, 다른 교회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이 목사: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추구해 왔다는 점이 같은 점이며 다른 점입니다. 여기서 벗어나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문제에 메이게 되면 교회는 쉽게 그리스도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신 것처럼 나도 그 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이상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의 말씀의 공급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필연적인 결과로 교회는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본이 되는 것 외에 교회 형제들에게 어떻게 살아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말씀을 공급하는 것 외에 교회의 행정이나 일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목양으로 말하자면 방목과도 같은 형태이지요.

 

기자: 공동체의 삶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요?

 

이 목사: 십계명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다시 부연해 말씀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따르자면 내가 미리 형상을 만들어 놓고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제 삶에 적용하면 교회는 어떤 그림을 가지고 만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교회가 이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삶을 돌아보면 주의 손에 이끌렸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교회는 사람의 손길이 아닌 주의 손으로 단장된 신부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며 즐거워 할 뿐입니다.

 

집회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는 형제들이 생명이 성숙한 만큼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 자발적인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자발적인 위임이 일어나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할 필요가 없게 되니 인위적인 손길을 최소화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인도하는 사람은 기다려야 되기 때문에 비록 더디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참 아름다운 길이고 모든 교회들이 본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회들이 나아갈 길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이 목사: 시편 50편 말씀에 하나님은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우주적 거처가 되자면 더욱 넓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고백한다면 교리나 제도나 형태의 차이 때문에 옳고 그름의 시비를 지양하고 하나이면서도 다양한 그리스도의 몸을 추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교파가 독점하거나 한 지체가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지나갈 뿐입니다. 저도 내가 아는 것이 하나님의 어떤 부분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다른 것에 대해 늘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모든 지체들이 더 넓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만나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만난 77세의 이현래 목사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며 일생을 산 연륜 때문인지 그에 대한 느낌은 온유함과 겸손함이었다. 특별히 모가 나거나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도 없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의 분량만큼 말씀하는 모습이 진실해 보였다. 예수와 사도들이 오늘 우리 곁에 살아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집회를 통해 본 대구교회는 생명의 흐름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람이 성숙한 만큼 일이 진행된다는 이 목사의 말씀은 오늘날 교회들에 던지는 역설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초대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많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듯이, 말씀과 그 흐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신분과 지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한 형제자매처럼 지내며, 가난함과 부끄러움과 멸시받는 일들 속에서도 더욱 짙은 삶의 향기가 나오고, 다소 표현이 어눌한 간증에도 많은 사람들의 깊은 갈증이 해소된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이끌린다.”(이사야11:6) 라고 예언한 말씀이 이런 사회를 그린 것이 아닐까? 초대교회가 오늘날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종교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21세기, 기독교에 대한 젊은이들의 기대가 사라져 가는 오늘날 대구교회는 교회가 나아갈 길에 한 귀중한 본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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