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그대에게] Ⅰ.시작을 찾는 이에게 -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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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06 17:05 조회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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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1)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 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창세기 2장 8, 9절).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타락이 없었다면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었을까요?  성경 창세기에는 두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 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의 시작과 모든 문제의 시작을, 나무라는 상징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먹어야 할 양식은 선악의 지식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본다면 생명은 ‘살아 숨 쉬고 활동하게 하는 힘’입니다. 또 이차적으로 “카메라는 렌즈가 생명이다.”라고 말할
때, 생명은 ‘그것을 있게 하는 가장 소중한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반대인 죽음은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 죽음은 ‘숨이 끊어지거나 뇌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차적 의미는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선악의 지식 나무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는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몸이 죽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불행의 시작입니다.


죽음이 ‘관계가 끊어진 것’이라면 생명은 ‘관계’에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의 공급이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 하나님을 표현하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이 관계가 곧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좋은 관계에서 좋은 것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있고, 사람과의 좋은 관계에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 같은 좋은 가치들이 발생합니다. 삶의 질은 그 사람이 가지는 관계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 축복을 흐르게 하는 연결의 통로와도 같습니다.


 관계는 삶의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 사람으로서 바른 위치를 가져야 하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위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옆으로 사람과의 복된 관계를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에덴의 생명나무는 의미에 있어서 예수의 십자가와 같습니다. 십자가는 누구와도 복된 관계를 가지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생명나무(2)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 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 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 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요 한계시록 22장 1, 2절).

 

망고라는 과일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망고를 먹어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망고에 관하여 아는 것으로 망고 먹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일 하나도 맛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하나님을 아는 길은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는 길을 독특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맛보고 먹는 길입니다. 시편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시34:8). 하나님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맛보고 경험해야 알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내 경험과 상관없이 계시는 분이지만, 경험한 사람에게서 증명되고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지으셔서 그 지으신 사람을 동산에 두시고 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어 그 열매를 먹게 하셨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며 생명을 공급받는 길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맛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을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생활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 말씀의 독특한 점은 “나를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훌륭한 가르침이 많지만 자신을 먹으라고 말하는 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먹으면 소화되어 내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은 그분의 생
명이 내 생명이 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이라고 고백합니다(골3:4).


그러면 예수를 먹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거꾸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어떻게 선악의 지식 나무 열매를 먹었는지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선악의 지식이 “먹기에 좋고 보기에 좋고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고 했습니다(창3:6).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실제로는 곧 먹는 것입니다. 예수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그분의 모습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예수도 좋아하고 오천 명을 먹이는 예수도 좋아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는 모두 실망하고 떠났습니다. 예수의 참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힌 데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를 진정 좋아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하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모습은 사람이 꾸며 만든 것이 없는 참되고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는 자는 이토록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벌거벗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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