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그대에게] Ⅱ.예수를 찾는 이에게 - 예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남 / 환난 중에 만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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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08 12:29 조회1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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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남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 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 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 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10절).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산소(oxygen)라는 물질은 생명을 살게 하는 매우 중요한 물질입니다. 그러나 산소는 생명이 죽으면 곧바로 모든 것을 썩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산소는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말할 수 없고, 생명이 있으면 살게 하는 물질이 되고 생명이 없으면 썩게 하는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칼이 요리사의 손에 있으면 좋은 도구이고, 강도의 손에 들려지면 위험한 흉기가 됩니다. 자연과 환경은 어떤 사람에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 손에 무엇이 있고 우리 환경이 어떠한가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그곳을 샘들이 터져 나오는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시84:6). 눈물 골짜기라는 말처럼,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사
람들은 그 환경을 만족이 넘치는 곳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차이, 곧 생명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없습니다. 원치 않는 일을 당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암과 같은 질병과 절망스런 일이 찾아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저주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처럼 앞이 열리게 됩니다. 자신이 당하
는 고난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에 대해 새로운 눈이 열리고,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회로 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하는 생명을 우리는 부활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33년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인간이 겪는 연약함과 고통과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그는 극도의 고난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러 오신 것입니다(요10:10).

 

우리에게 다른 것은 없다 할지라도 예수의 생명, 부활생명, 모든 환난과 죽음까지라도 삼키고 승리하는 생명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 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환난 중에 만난 위로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 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 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 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린도후서 1장 3-6절).

 

The Father of compassion and the God of all comfort, who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For just as the sufferings of Christ flow over into our lives, so also through Christ our comfort overflows. If we are distressed, it is for your comfort and salvation; if we are comforted, it is for your comfort, which produces in you patient endurance of the same sufferings we suffer

 

사람은 일차적으로 음식을 먹고 살지만, 사람의 마음은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먹고 삽니다. 험한 세상을 연약한 인생으로 살아가자면 누구나 모범답안지처럼 정답대로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매일 매일 긍휼과
위로와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보다 더 귀중한 것은 좋은 관계를 가지는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을 부자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위로를 풍성히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사람 속에서 마음먹는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받는 그릇이기 때문에 자기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받아 본 경험이 있어야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 줄 수가 있습니다. 자랄
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대하든지 넉넉함과 여유를 가지고 행동합니다.

 

사람의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사랑 받는 정도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과 위로가 넉넉지 못한 환경일수록 예수의 위로와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이 깨달아지고 더 크게 와닿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여덟 형제 중 막내아들로 아버지의 무시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모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시27:10). 다윗은 일생 동안 수많은 환난을 경험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사건이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찬송으로 바뀌게 되어 그의 입을 통해 수많은 시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온갖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넘친다면,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위로가 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고후1:5). 우리의 어려움을 통해 교회와 하나님의 위
로를 경험하고,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고후1:4).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과 배신과 극도의 절망 속에서 십자가로 가셨지만, 우리의 위로자가 되셔서 어떤 절망에도 그의 위로가 미치지 못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통해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만져 주며, 깊은 어두움에까지라도 빛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위로 자격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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