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1. 하나님과 사람 가. 사람의 목적 - 하나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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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1 15:46 조회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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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1부 : 나는 왜 지금, 여기에]

1. 하나님과 사람


가. 사람의 목적 - 하나님 형상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만들어진 모든 것은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만든 자에게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들은 소중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으며, 왜 이런 특성을 가졌으며, 왜 이런 길을 가야 했으며, 어디에서 내 인생의 가치가 발견될 것인지, 지으신 이의 목적을 모르면 해석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첫 번째 행하신 사랑은 사람에게 고귀한 목적을 두신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돌보심’으로 말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돌보심은 먼저 고귀한 목적을 두셨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입니다. 사람은 소중하게 보존되는 것보다 목적이 있어서 소중하게 쓰이는 데서 참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쓰레기는 꼭 나쁜 물건이라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쓸모가 없어지니 버립니다. 집에서도 제 기능을 하지 않는 것, 문제는 없지만 쓰지 않는 것, 그리고 제 위치에 있지 않는 것들은 결국 쓰레기로 버려집니다. 가치 있고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만든 자의 목적 또는 사용자의 용도와 관계있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지만(롬1:20),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목적을 두시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사람의 존재를 기독교적으로 규정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육체적 유사성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하나님을 묘사할 때 ‘주의 손가락, 하나님의 발등상’ 등 신인동형(神人同形)의 방법을 사용합니다(창3:8).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에 대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육체적 유사성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20:4).

 

둘째, 서방 기독교의 전통은 인간의 영적 특징을 하나님 형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억압하고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려 합니다. 이런 입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육체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배제하고 영혼만 하나님 형상으로 가르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셋째, 가장 보편적으로 지지를 받는 해석은 사람을 육과 정신을 아우르는 전 인격적 존재로 보면서 하나님 형상을 혼적 특성에서 찾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이 사람의 혼 속에 담겨져서 하나님의 의향과 마음을 가진 존재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2장의 ‘산 혼으로 지으셨다.’는 말씀으로 뒷받침됩니다. 그래서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자신의 통치를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손의 형상으로 포클레인을 만들어 손의 일을 대신하게 하고, 두뇌의 형상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머리가 하는 일을 대신하게 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어서 땅 위에서 하나님 일을 대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 또 다른 중요한 통찰로서 ‘하나님 형상’을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창1:27).” 사람은 누구와 어떤 관계를 가지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의 삶은 남자와 여자의 공존이 대표적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의 삶은 영원 속에 홀로 독처하지 않으시고 관계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에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면서 돕는 배필을 지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이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해석하였습니다(엡5:31-32).


다섯째, 창세기의 말씀은 신약의 빛에 비추어 볼 때 더 깊고 명백한 의미를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의도하신 삶이 무엇인지 가장 명백하게 표현된 모습입니다. 바로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고후4:4, 골1:15).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삶의 모습은 인간이 참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그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셔서 자신과 친밀한 교통을 하게 하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림으로 궁극적으로 모든 것에 당신의 통치가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게 하자(창1:26).”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러 “만유가 그 발 아래 복종케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빌2:10).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말씀은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출발이 됩니다. 또한 어떤 존재 앞에서도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존재감을 가지게 하는 넘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성품과 마음을 표현하게 하려고 지으셨다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존재적 가치를 극대화하며 살게 합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사는 길은 조건이 없습니다. 능력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기질과 특성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하나님의 고귀한 위임입니다. 이 한 가지 목표로 삶이 규정되면 모든 것이 쉬워지고, 이 목적에 제한되면 다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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