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1부] 2. 두 길, 두 노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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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09 17:22 조회1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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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1부 : 나는 왜 지금, 여기에]
2. 두 길, 두 노선 

 

나. 선악의 지식의 나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인간 사회에는 수많은 다툼이 있어 왔습니다. 전쟁이 없었던 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작게는 친구와 형제와 부부 사이에, 크게는 국가와 민족과 종교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들이 있어 왔습니다. 자세히 보면 모든 다툼에는 동일한 패턴이 존재합니다. 다툼은 자신의 옳음과 상대방의 그름을 밝히려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의 당사자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은 끝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다툼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그름을 더 명백하게 입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일에는 내가 왜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이유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미워하고 정죄하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내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므로, 더욱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성경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와 고통이 있지만, 모든 문제의 한 뿌리는 ‘선악의 지식의 나무’라고 말씀합니다.

 

선과 악이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과 악은 한 나무의 두 가지와 같이 같은 실체의 서로 다른 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지만, 뱀이 여자에게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5)”라는 말로 유혹했기에 사람이 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이 나무를 왜 동산에 두셨으며, 사탄은 왜 사람을 유혹했고, 또한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사람은 왜 선악과를 먹었을까요? ‘선악의 지식’이 무엇을 의미하며, ‘하나님같이 되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선악과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순종을 시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결과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에 시험하신 것이라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시험하기 위하여 먹고 죽을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 먹으면 반드시 죽는 선악과를 두셨다는 해석은 무리이고 성경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1) 두 존재, 두 양식

선악의 지식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칼이 요리사의 손에 있는 것과 강도의 손에 있는 것이 다르듯이, 누가 어디에 사용하나에 따라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필요해서 선악과를 두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의미를 다 모를 뿐이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사람을 위한 양식으로 두셨다면, 선악과도 무언가를 위한 양식이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사람과 천사를 비교하면서 사람을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지만 아들로 삼으셨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아들들을 위하여 섬기는 종으로 보냈다고 합니다(히1:14).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과 본성을 공급받아 후사가 될 존재이지만, 천사는 능력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후사가 될 인간을 위해 일하는 종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들과 종이라는 두 존재를 지으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생명나무는 후사가 될 사람을 위한 양식이고, 선악의 지식의 나무는 종이 되어 섬길 천사의 양식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타락한 천사는 후사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양식인 선악과를 먹게 하여 사람이 후사로서의 위치를 이탈하게 하고 종의 길을 가게 했던 것입니다(계12:9). 예수님은 죄에 종노릇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요8:44).”고 말씀했습니다. 종의 세계의 근원은 타락한 천사, 곧 마귀인 것입니다.


2) 선악의 판단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가짐으로 사람은 분별하게 되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의 판단은 다른 사람의 판단과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선악의 판단에서 다툼과 분열이 생기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정죄와 판단은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해야 할 부모와 자식 관계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생명의 관계입니다. 자식이 잘못했을지라도 부모는 허물을 덮고 싶은 것이며, 자식에게는 부모가 어떠하든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유일한 근본이 되는 그런 관계입니다. 만약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면 자식은 부모를 멀리하고 싶어지고 부모라도 자식이 미워지게 됩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실제로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을 왜 이대로 내버려 두시며, 왜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으며, 왜 이런 일에 침묵하시는지……. 잠잠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이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악의 지식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가져오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끊어진 상태를 죽음이라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싸움과 분열, 전쟁과 파괴에는 어디서나 선악의 판단이 기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악의 판단이 들어가는 곳에서는 가정이든 교회이든 세상의 어떤 관계든지 깨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판단은 관계와 연합에 대해서는 독과 같은 것이기에,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경륜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람들 사이에도 담이 생기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주려 하신 모든 영적인 축복은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3) 선악의 지식

선악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지만 ‘선악의 지식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라는 이름에서 그 성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식은 판단할 수 있게도 하지만,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주먹도 힘이고 돈도 힘이지만 인류 역사를 지배해온 힘은 지식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지식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까? 사람은 지식으로 무엇을 만들 수가 있어서 사람이 만든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노아의 후손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며, 흙 대신 역청을 쓰자.” 하였습니다. 인공적인 것으로 창조를 대신하자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화학물질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수많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심각한 것은 인격적인 인공물들입니다.

 

대표적인 인공물이 ‘외식(外飾)과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의도적인 행위, 가장되고 계산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이런 것들이 사람이 지식으로 만든 인공물들입니다. 이런 행위를 만들어 가짐으로써 사람은 자기 의를 세우려 합니다. 예수님께 외식이라고 강하게 책망 받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식과 제도 등을 자세히 보면 그것이 다 사람의 지식에서 나온 인공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생명책에 따른 심판입니다(계17:8, 20:12). 생명 아닌 것, 즉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마7:16). 바벨탑은 땅에서 쌓아 올라간 인공물이고,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 예루살렘은 사람의 손으로 아니한 하나님의 손에 빚어진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자신인데, 사람은 늘 자기가 만든 의, 자기의 수고가 담긴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안에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진 모든 의를 끝내려 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같이 되려 함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고 유혹했습니다. 선악과는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같이 되려는 본성과 관계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같이 되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고 자신이 원천이 되어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자기 옳음을 내세우며 살고 싶어 합니다. 내 의를 세우려는 것, 내 판단을 따라 내가 선택하고 내 인생의 주권을 가지려는 것, 이것이 하나님같이 되려는 정욕인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한이 없는 존재를 동경하게 됩니다. ‘천사처럼 살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이 육체를 가진 사람의 존재적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바람을 모두 가진 존재를 생각해 낸다면 그것이 바로 천사일 것입니다. 천사는 인간 소원의 총체적인 표현입니다.

 

자신에 대한 불만과 다른 것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무엇엔가 눈이 어두워지고 유혹이 생기는 것은 항상 맞물려 돌아가는 것들입니다. 육체로 지어진 인간 존재에 대한 불만은 천사를 부러워하게 되어, 결국 인간에게 두신 고유한 축복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연히 인간은 위치를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이기에 선호와 옳음이 제각각 다릅니다. 사람의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옳음을 내세워 주장하고 선택한다면 다른 사람의 옳음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서로 옳다고 하기 때문에, 자기 욕심과 선호를 따라 선택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충돌입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평화를 이루는 것은 앞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일 뿐입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어야 하고, 인간은 창조자 앞에서 피조물의 위치에 있어야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5) 선악과의 결과

선악과는 종의 양식이었고, 종으로서 수행해야 할 능력에 필요한 양식이지만, 하나님의 후사로서 복된 관계를 가지는 일에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자기 목적을 도모하여 살 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두신 하나님의 목적과 경륜 안에서 보면 그것은 먹지 말아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성령의 열매들은 온전한 관계와 연합을 통해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둘이 합하여 하나 되려 하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순종의 제사를 드리려 하면, 선악과가 얼마나 해악이 되는 것인지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연합을 이루는 교회가 나타날 때, 주의 몸인 교회가 하나 되어 영광스러운 주의 형상을 나타낼 때, 사탄이나 선악과의 정체가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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