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1부] 3. 사람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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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6 14:02 조회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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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1부 : 나는 왜 지금, 여기에]
 

3. 사람의 가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4-5).”

 

아무리 골프를 잘 치는 선수라도 야구 경기에서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없습니다. 고래가 물속에서는 왕 노릇할 수 있어도 물 밖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뿐인 삶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인간 사용설명서’가 필요합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을 사람의 가치대로 살게 하는 것인가?” “어디서 사람의 소중함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가?”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 

성경은 인간 사용설명서와도 같습니다.

사람은 유한한 육체 속에서 연약함과 죽음이라는 숙명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제한과 약함과 유한함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늘 극복할 과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바로 그 점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와 귀중함과 아름다움은 사람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 서면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줄 알게 되며 모든 헛된 수고가 그치게 됩니다. 

 

 

가. 연약함의 가치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인간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연약함은 자기를 보존하는 데는 한없이 불편한 특성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의존해야 하고, 내 뜻대로 할 수 없어 남에게 좌지우지되고, 피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니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에게 침해받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않게 하려고 강한 자, 자존자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우리 연약함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연약한 운명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어린양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만족이 되는 제물을 대표하는 것도 어린양이고, 역사적 사건인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에도 어린양 고기를 먹습니다. 또한 인류의 최종 완성을 제시하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도 어린양의 승리입니다. 

 

세상에서 무시당하거나 침해받지 않고 자기를 지키고 자기 뜻을 펼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어린양의 운명이라는 것은 가장 보잘것없고 비참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싫어 버렸던 연약함을 상징하는 어린양에게 능력과 영광과 존귀와 부와 지혜와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계5:12). 마지막 보좌에 앉아 만물을 통치하는 이는 용도 아니고 거대한 짐승도 아닌 어린양입니다.

 

실제적으로도 슬픔의 자리에 누가 위로가 될 것이며, 다툼이 있는 곳에 누가 평화를 가져오며, 세상의 얽매인 것에서 누가 자유함을 가져오겠습니까? 그것은 크고 강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어린양으로 묘사되는 연약한 특성이 가져오는 축복입니다. 전에는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어린양의 운명을 무시하고 싫어 버렸습니다. 아담은 생명나무를 버렸고, 제자들은 십자가로 가는 어린양이신 예수를 버렸고, 인류는 연약함 속에 두신 사람의 복된 위치를 멸시했습니다. 

 

씨를 발아하는 흙은 부서지고 갈아질수록 생명이 자라기에 좋은 땅이 되고, 모든 배설물과 찌꺼기들을 받아들여 기름진 땅이 됩니다. 흙이 생명을 받아들이려면 연약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또 연약한 여자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이 착상하여 자라게 됩니다.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는 힘든 일에 남자의 강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의 약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비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인생의 연약함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에게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귀중한 특성입니다. 지하수가 약한 지면으로 스며들어 흐르듯이, 연약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됩니다. 사람들은 미련하고 약한 것들을 멸시하고 천대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이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오는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 고난의 가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창세 이래로 사람이 가지는 의문은 “하나님은 왜 육체를 만드셨으며, 육체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유혹이 육체로 인하여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에서 육체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연단하실 수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겪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연단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연단을 통해 사람을 보석 같은 존재가 되게 하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게 되는 귀중한 그릇입니다. 

 

보석이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해 흠집날 수 없도록 단단해진 것처럼, 사람도 연단으로 인해 보석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광야는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가장 불편을 겪는 곳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받은 마귀의 시험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 육체가 없는 존재에게 조롱받는 자리와도 같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며 피곤하고 병드는 모든 문제가 광야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승리하셨습니다. “고난을 인해 하나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시119:71), 사람은 땅 위에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6-7). 육체는 연단을 위해 필요하며 사람이 영광스러워지는 것은 연단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거친 인생의 영광을 안다면 하나님이 육체를 가진 연약한 존재로 우리를 지으심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보석같이 아름답고 순금처럼 정결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육체를 가지고 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완전한 축복이고 영광이며 하나님 필요 안에 있는 시간들인지 그 넉넉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죽음의 가치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사람이 천년만년 살 수 있고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선택의 골치 아픔과 우선순위를 둘 중요한 것, 서둘러야 할 급한 것, 못해서 아쉬운 것 없이 천천히 모든 것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과 천년을 원수져도 상관없고, 사랑하는 일을 일만 년 미루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의 제한 때문에 더 값진 것을 선택하며 농도 짙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앞에 놓고 살아가기에 하루하루를 귀중하게 여기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순도 높고 진하게 살도록, 하나님에 대하여 순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도록 지어 놓으신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귀중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되고 화해가 일어납니다. 제단에 올려진 제물로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가 일어난다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우리가 정말 제물처럼 죽음을 내어 놓는다면 화해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또한 죽음은 삶의 풍성한 수확을 위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죽음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통해서 그는 인류 역사상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아서 할 수 있는 일보다 죽음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더 위대하고 놀라운 것일 수 있습니다.

 

지옥을 묘사할 때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마9:48)”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 즉 죽음의 잔을 받는 일입니다. 사탄이 흉내 낼 수 없고 침해해 들어올 수 없는 한 자리가 십자가라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들로서 사람이 누릴 존귀와 권세와 영광을 십자가 안에 두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다(히2:9)”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라. 인생의 경작

 

피조물로서 사람의 축복은 없는 것을 더 만들어 가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경작하여 풍성을 누리는 것입니다. 

 

잠언에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다(잠12:11).”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농사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흙과 같은 인생을 경작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작하는 밭입니다(고전3:9). 흙과 같은 인생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씨로 뿌려지기만 하면, 인생 안에서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며 무궁무진한 풍성을 수확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시고 “그의 근본된 토지를 경작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창3:19,23). 

 

또한 잠언에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잠5:15).”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파서 마실 나의 우물이 어디입니까? 시편 기자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은 실로 아름답도다(시16:6).”라고 말한 그 기업지가 어디입니까? 

 

그 자리가 바로 사람이라는 자리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운명으로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보석같이 연단될 수 있게 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지어진 것을 감사하게 되고,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장 소중한 축복으로 여기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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