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주의 날개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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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18-08-12 09:57 조회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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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 주의 날개 그늘 아래

 

 

1. 주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주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주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각의 변화

성경의 목표는 자기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뜻을 땅 위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적재를 적소에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모양으로 쓰시든지 주님이 결정하실 문제이다.

 

시편 17편에서 다윗의 중요한 관심 변화를 보게 된다. 자신의 의로움을 말하다가 주의 날개 그늘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 문자적으로 보면 내가 의로우니 나를 보호해 달라는 말 같지만, 경험적으로 볼 때는 내 의가 없기 때문에 주 날개 그늘이 필요하다.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8절)

눈동자의 히브리어 이숀은 작은 아이라는 뜻이다. 눈에 비쳐진 사람의 작은 형상을 보고 하는 말이다. 눈 속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 말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 안에 두셨다. 당신의 고귀한 목적 안에 우리를 두신 것이다. 그분의 시각 안에 있을 때 인생은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주님의 눈동자 안에서는 우리의 허물이 없어진.

 

이것은 특혜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답하셨다. 하나님 아들은 창조 질서를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질서가 얼마나 온전하며 아름다운지를 나타내 보이는 자인 것이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8절)

주의 날개 그늘은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람은 사탄의 송사 앞에 서면 자신을 가려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그의 덮으심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법궤 위에 두 천사(케루빔)가 있어 날개가 법궤를 덮고 있다. 법궤의 뚜껑을 시은소(속죄소)라고 한다. 법궤 뚜껑 아래에 하나님 말씀인 두 돌 판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시은소로 덮어져 있기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4:16).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있자면 내 날개를 접어야 된다. 내 의가 끝나야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내 일생 쌓은 옳음보다 주가 베푸시는 한 점 은혜가 더 크다는 고백이 다윗의 생각의 변화이다. 이런 사람은 환도뼈가 꺾여진 사람이고, 할례 받고 자랑이 끝난 사람이다. 주장하거나 판단할 수 없고, 자기가 했지만 은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살았나보다 주님이 내게 어떻게 행하셨는지만 관심하게 된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12:19) 함과 같은 사람이다.

 

참 만족은 주의 형상을 경험하는 것(15절)

세상의 분깃(축복)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14). 인생으로 태어나서 추구할 것이 그것밖에 없는 것이 불쌍한 것이다. 우리에게 다른 축복이 없다면 세상의 형통을 배 아파했을 것이다.

 

다윗은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 하였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다(새번역). 야곱은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꺾인 후 그곳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다. 환도뼈가 꺾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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