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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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18-09-23 10:03 조회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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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2018.09.23.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주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주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본 시는 이사야 53장과 더불어 구약성경에서 고난 받는 메시야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운명하시면서 외친 말씀과(1,27:46),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대한 조롱(6-8),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과정까지 묘사되어 있다(14-18). 그리고 22절부터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부활 이후의 상황으로 히브리서에서 인용되고 있다(2:12).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는 모든 사람이 버려도 하나님께는 인정받아야 옳은데, 하나님은 왜 이 사람을 버렸는가? 율법의 원칙으로나, 은혜의 원칙으로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어떤 원리를 봐도 버려질 이유가 없다. 이삭의 경우 봐도 아브라함의 완전한 순종을 보고 칼을 멈추게 하고 수풀에 걸린 숫양을 준비하지 않으셨는가?

 

예수는 하나님이 왜 버리시는 지 이유를 모르고 장대에 달린 놋 뱀처럼 십자가에 달렸다.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보는 자마다 살았다. 예수는 왜 달려야 하는 지 왜 버려져야 하는 지 자신 안에서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우리를 위한 죽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되돌리기 위한 죽음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이 말은 선악과 먹은 인간이 마지막 토해낼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말이다. 예수님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말이 아니라, 선악과 먹은 모든 인간을 대신해서 이 말을 토하신 것이다. 이 말이 끝나는 것이 정말 끝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를 대표한 자의 죽음이었다.

 

마지막 절규에도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못한 한 사람 안에서 모든 인간의 운명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는 이 자리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드러났다. 인간은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람의 운명을 보이신 것이다.

 

토기장이 앞에 진흙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든 이의를 가질 수 없듯이, 창조자 앞에 피조물은 내 모양을 주문할 수도 이의를 가질 수도 없다. 주신 잔을 받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바로 사람이 창조자의 손에 의해 맘껏 빚어져 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타나게 된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작품이 된다(2:10). 그의 삶은 주의 손에 이끌려 온 것밖에 없고, 하나님의 의도와 손길과 마음만 나타나게 된다.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22)

이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하는 자리에서 부활하여 나온 사람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우리는 한 근원에서 나왔다. 그래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2:11). 이 말씀 후 12절에 시22:22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20:17) 하였다.

 

형제는 아버지가 같고 근원이 같다. 우리 중 누구도 아버지 안에서 다르지 않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보고 상식이 깨지고 자신을 변호하려던 이유 다 사라지고 주신 것에 아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모두 근본이 같은 한 형제로 만나진다. 교회에서 만나 교회로 산다는 것은 형제로 만나지는 경험이다. “내 형제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우리와 같은 운명임을 전하는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주를 기억하고 돌아옴(27)

이 말씀은 온 인류가 하나로 만나질 수 있는 소망과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끝이 난 사람 안에서 휘장이 걷히고 누구라도 교회에서 형제로 만나지고 땅 끝이라도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 소망이다. 계시록에 새예루살렘 성의 영광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성으로 들어온다는 이상과도 같다(21:26).

 

세상의 거짓이 드러날 때 돌아 올 진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땅의 모든 끝이 돌아 올 진실한 사람으로 준비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자아가 허물어진 자리에서 휘장이 찢어지고 온 인류가 만날 터전을 준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소명인가. 인류가 돌아올 본향이 우리를 통해 준비되고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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