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문들아 들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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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18-10-20 14:12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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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4. 문들아 들릴지어다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주의 것이로다

2. 주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주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주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주시요 전쟁에 능한 주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주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24편은 제사장들이 법궤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고 순례자들이 따라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역사적 정황으로는 다윗 왕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지고 올 때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삼하6). 이 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왕들 위에 주권적으로 통치하신다는 선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시고(10:7), 열린 문이시다(3:8). 십자가의 말씀은 막힌 담을 허셨고, 원수된 것을 소멸하고, 둘을 합하여 한 새사람 되게 하셨다(2:14-16). 또한 아브라함에게도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22:17) 하셨다.

 

만물은 다 주의 것(1~2)

 

모든 것이 주의 것, 즉 모든 것이 주의 통치 아래 있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주인을 아는 것이 근본을 아는 것이다. 만물의 구원은 만물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다. 주인만큼 자기 것을 사랑하고 귀중하게 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지키는 것보다 참 주인을 만나는 것이 더 복된 일이다. 내 인생이 나를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님을 알 때 내 문제가 다 사라지고, 나를 정죄할 것이 사라지고, 사탄의 송사가 끝나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떠난 것이 타락이고 원죄라고 한다. 이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고 있는 죄 된 본성을 말한다. 창세기의 말로 하면 하나님 같이 되려하는 정욕이고, 신약의 말로 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다. 또 다른 말로 자기중심, 자기소욕, 자기높임이다.

 

예수에 대한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웠던 선악과의 유혹을 그 시대 상황에서 더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신 길은 사람들과는 정 반대로 하나님 중심, 자기비움, 자기낮춤이었다.

 

주의 통치 안으로(3~6)

 

누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살며, 그의 통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주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손(행위)과 마음(내면)과 뜻(네페쉬, , 존재)까지 하나님의 본성과 친밀해지는 것이다. 율법적인 방법은 행위를 바꿔서 마음과 뜻까지 바꾸려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생명을 바꿔서 뜻과 마음과 행위까지 그 생명이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가 내 생명이 될 때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진다. 주님이 내 생명이 되면 그가 하시는 일을 체질적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은 생명의 심판이며, 우리가 자기 생명인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주께 복을 받고 의를 얻으며, 주를 찾고 그 얼굴을 구하는 사람. 이 사람은 오로지 주 앞에 서서 주님에 의해 평가되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고전4:3) 하였다. 주인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만 중요하다. 이 사람이 참으로 자유자이다. 이 사람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게 된다(3:23).

 

주님이 우리 안으로(7~10)

 

1~2절은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3~5절은 그분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7~10절은 영광의 통치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하였는데, 주님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함을 말한다.

 

예수님은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하셨다. 주님은 언제 어떤 모양으로 오실지 모른다. 풍성한 말씀으로도 오시고 보리떡 같은 간증으로, 때론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오실 수 있다. 영광스런 모습으로도 오시지만 초라한 형체로도 오실 수 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하였다.

 

문이 열리는 것은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고 무시하고 벽을 쌓았던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오는 것을 경험할 때 나의 선악의 지식을 내려놓게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형제들이 내가 알지 못했던 양식을 가져오게 된다. 형제들은 나 좋으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좁은 상식과 이해 속에 사람을 가둘 수가 없다. 주께서 어떤 모양으로 오셔도 영접할 수 있도록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주께로 열려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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