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042] 042. 은혜의 청지기 직분 (엡 3:1~4) [정한성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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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순호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18 16:33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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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042] 042. 은혜의 청지기 직분 (엡 3:1~4) 

2019. 8. 18. 서울교회 정한성 형제 주일말씀

 

[에베소서 3장 1절~ 4절]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에베소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의 계시로 말미암아 은혜의 청지기 직분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려고 한다. 바울의 간절한 소원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청지기 직분이라는 말은 ‘경륜’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주로 ‘행정’, ‘분배’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떠함을 사람들 속에 넣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생명을 살아내도록 하신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은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 속에 당신 자신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대단히 많다. 이런 많은 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을 그 백성 속에 분배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백성이 당신 자신의 어떠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율법을 주신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향과 마음을 자기 백성들 속에 심어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가지고 한 백성, 한 나라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청지기라는 말은 큰 집의 가정 일을 돌보는 사람(집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에게는 큰 가족, 우주적인 가족이 있는데 거기다가 하나님이 원하는 어떤 것을 분배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행정의 중심은 분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삶, 생명을 아담 속에 분배해주신 것이다. 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타락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은 하나님의 덮어주는 은혜를 분배하셨다는 뜻이다.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은 노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분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씨를 주셨고,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분배받았다. 이것이 점점 분명해져서 예수 시대에 오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 분인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제자들에게 나눠주려고 오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의 운명과 영을 분배해 주었다.

 

가르치는 것과 분배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분배한다는 것은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생명밖에 없다.바울은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사역을 맡은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저녁에 마지막으로 떡을 나누어주셨다.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살이다. 이것을 받아마셔라 이것은 내 피다”고 하셨다. 그동안 제자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십자가에서 무엇을 분배받았는가?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분의 운명을 분배받았다. 그 운명을 알자마자 그 운명은 곧 내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운명을 분배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부활할 수 없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모르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용서하시고 구속해주셨다는 것만 알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십자가를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운명밖에는 분배받을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이 바꿔지지 않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바꿔질 수 없다. 내가 누군가? 내가 어디 있는가? 십자가에서 내 위치를 알 때 우리는 저절로 바꿔지게 된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운명이 분배되어야만 부활 안에서 그분의 영을 분배받게 된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서 처음하신 말씀이 “숨을 크게 내쉬며 가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낳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로 말미암은 그의 운명과 부활로 말미암은 그의 영이 없으면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직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보았다. 무엇인가를 분배받았다. 그의 운명을 분배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동일한 운명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운명을 우리의 운명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이 되게 되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보면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들에게 자기의 운명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분배받았으니까 그 분배받은 것을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내놓으려 해도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 우리는 적든지 크든지 분배하는 사역을 맡고 있다. 이것이 청지기 직분이다. 이 직분을 충실하게 이행할 때 다른 사람에게 풍성한 양식을 공급하게 되고 교회를 풍성하게 한다.


바울은 어떻게 청지기 직분을 맡은 사람이 되었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갇힌 자로서’ 청지기 직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러함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에 갇힌 자라는 뜻이다. 그는 표면적으로 감옥에 갇힌 자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갇힌 사람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일로 갇혔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 안에 갇힌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다(시16:6).”고 했다. 이 말은 감옥 안에 갇혀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곳이 너무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담은 그에게 줄로 재어진 구역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줄로 재어진 구역이 있다. 그 구역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름다운 구역이라고 보이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줄로 재어진 구역은 교회이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도 이 구역 안에 있고, 이면적으로도 이 구역 안에 있다. 이 구역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줄로 재어진 구역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갇힌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제한된 인생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깊이 알기 원한다. 주머니 속의 예수 같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내가 그에게 갇힌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갇힌 자가 되면 나는 영원토록 그의 청지기가 된다.

 

누구를 위한 청지기인가? 나의 갇힘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갇힌 자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분배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갇힌 자가 아니면 청지기가 될 수 없다. 참된 청지기는 영원히 그 집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서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그의 운명을 받아서 그의 운명을 분배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 나름대로 사람을 산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산출(건축)할 수 있는 생명을 분배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명이 순수해야 순수한 교회를 산출할 수 있다. 생명을 분배하는 것은 그 생명밖에는 그 생명을 분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은 전적으로 예수의 운명을 받아서 그 운명을 분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갇혀있어도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갇혀있으면서 ‘내가 예수께 갇힌 바 되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는 그 안에서 청지기 직분이 생기게 된다. 어디를 가도 주님께 갇힌 것이 발견되면 나는 청지기 직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풍성한 것을 공급하는 청지기가 되게 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가두면서도 자유케 하고, 묶으면서도 해방케 하는 분이다. 바울은 자기가 살고 있는 감옥이 바로 그리스도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감옥의 생활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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