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할머니에게 (글: 신소정, 번역: 신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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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유길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16 02:06 조회209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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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할머니에게 (: 신소정, 번역: 신유길)

 

Happy Mother’s Day to all mothers and mothers’ mothers whose love, sacrifice, and courage shaped us into the people we are today.

모든 어머니들에게 어머니의 날을 맞이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오늘의

우리들을 만드셨습니다.

 

My grandmother is from North Korea. She had a beautiful home where she lived happily with my grandfather, who adored her. When persimmons, her favorite fruit, were out of season, he would travel for miles south, just to find them for her. Before she married, she was educated at Ehwa women’s college in Seoul. My grandfather came from a family of educators who built schools in the north. He later studied economics at a university in Japan, but passed away there. She never remarried after his death.

나의 할머니는 북한에서 오셨습니다. 그녀는 저의 할아버지와 아름다운 집에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계절이 지난 후에 감을 먹고 싶다고 하셔서, 할아버지께서 감을 구하려고 남쪽으로 수백리 길을 여행 하셨습니다. 결혼 전에 그녀는 서울에 있는 이화여전에서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북한에 학교를 (오산학교-역자)세우신 교육자들의 가정 출신 입니다.

As Korean wartime set in, Russian soldiers took over her home to set up headquarters for their war operations. She fled to the south in the middle of the night with my mother, who was a little girl at that time. (Today, her home in the north is used as a museum.) Although she could not take much with her, she carried some of the precious, highest-quality silk fabrics that were given to her by my grandfather as a wedding gift.

한국전쟁이 돌발 한 직후에 러시아 군인들이 할머니의 집을 빼앗은 후, 작전본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날 할머니는 어린 딸 (박정희-역자)을 데리고 밤중에 남쪽으로 도망 하였습니다. (현재 그녀의 집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록 그녀가 가지고 나온 물건이 별로 없으나, 나의 할아버지가 결혼 기념으로 주신 최고급의 비단의 일부를 갖고 오실 수 있었습니다.

 

She went to Seoul, where she dedicated her life to educating young women and teaching them skills that would help them rebuild their own lives. She also committed her life to the church, which she served with diligence and love. Once, her tiny home caught on fire, and all but one of the precious silk fabrics were destroyed. She and my mother barely escaped through a tiny window.

그녀는 서울로 오신 후에, 교육과 교회생활에 헌신 하셨습니다. 그녀가 살던 작은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모든 재산이 타버렸으나, 비단 옷 한 벌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는 작은 창문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Later, the war conditions forced her to flee further south, and so she moved to Daegu, where my mother attended university and later met my father.

 

After a short period of time, my grandmother returned to Seoul and once again, worked for the Presbyterian church which she served until her retirement. She has been waiting for Korean reunification to see surviving family members, the home of her youth, and my grandfather’s grave site.

전황이 좋지 않아서, 그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대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나의 어머니가 대학을 다니고 훗날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할머니는 다시 서울로 돌아 오셔서, 교회를 위해서 일하시다가 은퇴 하셨습니다. 그녀는 살아남은 식구들을 다시 만나고, 그녀가 젊은 시절에 살았던 고향과, 할아버지의 묘지를 보고 싶은 희망 때문에 한국의 통일을 기다리셨습니다.

 

When I told my grandmother that I would graduate with a masters degree from Manhattan School of Music, I explained that she could watch my recital on a computer screen, as I would send videos of the concert to her. But she insisted on attending the performance and Commencement ceremony in person. So my 95-year-old grandmother endured the 15-hour flight (Daegu to Seoul to New York) to be here with me.

내가 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 하게 될 것과 비디오로 나의 졸업연주 실황을 보실 수 있을 것임을 말씀 드렸을 때, 할머니는 직접 졸업식과 연주회에 참석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95세의 할머니께서 대구-서울-뉴욬으로 15시간의 비행시간을 견디면서 오셨습니다. 저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입니다.

 

Immediately after the Commencement ceremony, we took this photo to commemorate four generations of women in our family. My grandmother is wearing a Korean traditional dress. The top part of the dress is made of the last remaining silk fabric that was given to her by my grandfather and survived the fire in Seoul.

졸업식을 마치자 말자, 우리는 우리 가족의 4세대에 걸친 여인들을 기념하려고 이 사진을 촬영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전통한복을 입으셨습니다. 윗저고리는 나의 할아버지가 주신 비단 가운데 화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옷감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Like so many others whom we honor today, my grandmother is a woman of valor, whose strength and bravery built stronger communities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her family members’ lives. Thank you. Thank you.

오늘 우리가 영화롭게 하려는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할머니는 삶의 수많은 굴곡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한 공동체들을 양육하고 가족의 기초를 확립한 용기의 소유자 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목록

채성윤님의 댓글

채성윤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와우.....
어머니의 표정이....너무 귀여우세요 !!!  ㅎㅎ
소정이의 밝은 미소가...너무 우리 마음도...환하게하고...
정희아우의 미소는....우리의 그리움을 부르고....
소정이 딸이 ....참 의젖하게 보여요 !!!
훌륭하신 어머님.....
따님을 잘 키우셔서....줄줄이...아릿다운 따님들의삶을......
이어주셨읍니다 !!!!
모든 어머니들은 어찌그리....훌륭들 하신지요 !!!
저희아버지는 ...늘...증조할아버지 반대로.....오산학교...
못가심은 ....속상해 하셨어요 !!!  ㅎㅎ
오라버니....감사합니다 !!!
소정아....한번 만나고 싶다!!!  온 가족이 한국여행함이 어떠할찌. ....
온 가족이....힐링하기위해서.....  샬롬 !

최영의님의 댓글

최영의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할머니는  인생의 수많은  굴곡에도 딸을 잘 키우셨고..
또 딸은 그의 딸을 훌륭하게 키워서 자기의 조상인 할머니의  인생을 기념하고..  소정이의  딸도 예쁘고 의젖한 아가씨군요..
이 시대에  용기 있는  딸들이고 ,  4대가 함께  하는 감동되는  가족입니다

이수진님의 댓글

이수진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쟁과 난리를 겪으며 많은 어려움속에서
4대를 이어 훌륭한 딸들을 키워낸 감동실화를
들려주고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이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최종적 사회의 이상을 제시하는 대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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