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놓고 엉엉 울었다 (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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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물 셋이고 할아버지는 여든 여덟이던 해, 우리는 만났다. 곱추의 몸으로 혼자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려고 서울에 갔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교회도 미친 듯이 다녔다. 새벽 기도부터 수요일, 토요일, 주일학교 청년부까지 간부를 맡아 매일 일하고 공부하고 교회에 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몸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라서 진통제와 피로가 회복된다는 드링크를 매일 아침마다 먹고 하루를 버텼다. 늘 다리가 아프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길을 건너다 길 복판에 주저앉아 버렸다. 차들이 난리가 나고 사람들이 와서 나를 인도로 데려갔고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기도원에 갔더니 몸이 너무 약해서 능력을 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 열심히 믿던 하나님이 확 날아갔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큰 오빠가 나를 광양 할아버지에게 데려갔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너무 놀라 두시간 가량 아무 말없이 쳐다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네가 일찍 나를 만났으면 등도 펴고 편안하게 살았을텐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니!'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를 무섭게 혼내셨다.

 

그날 할아버지와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내가 아파하면 엄마가 속상할까봐 크게 울지도 못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 마음놓고 엉엉 울었다. 그후로 할아버지와 나는 8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은혜의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얼마나 애를 쓰면서 살았는지 잠잘 때도 용을 써서 누가 이불깃만 만져도 파드득 깨었다.

 

할아버지는 늘 내게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는 찬송을 불러주셨다. 원래 나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같은 찬송을 좋아하는데 할아버지는 그런 궁상맞은 찬양은 절대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를 봄에 만나고 대구교회는 늦가을에 만났다. 

 

그 후로 나는 모자라는 오늘을 산 일이 없다. 곱추인 작은 몸으로 알콜 중독인 남편과 살면서 남편은 정상인이 되어 교회 생활을 잘 하고 있고 나는 교회에 쓰이는 넉넉한 사람이 되었다.

 

  ** 염경선 언니가 엮은 <흙으로 지으시고> 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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