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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회는 언제, 어떻게 설립되었습니까?
대구교회는 1977년 3월 대구시 남구 현 지하철 영대병원역 부근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이현래 목사님이 C.C.C 간사 일을 그만두게 되자 그분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던 학생 20여 명이 말씀을 더 듣고 싶은 갈망에 의해 모였고, 함께 교제하기 위해 작은 장소를 얻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 교회생활은 어떠했습니까?
말씀과 목사님 인격에 이끌린 형제자매들은 매일같이 목사님이 계신 거처와 집회 장소에 수시로 모여서 질문과 대답, 간증과 찬양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목사님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해 그분의 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매일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직장에서 퇴근하면 으레 목사님 집으로, 교회로 모였습니다. 언제나 목사님 집은 사람들로 시끄러웠고, 특히 밥을 먹을 때면 전쟁터를 방불했습니다. 그때 인간(아담)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었으며 때론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언제나 그때뿐이었지 그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많은 식구들이 함께 생활했지만 결코 남이 아니었고 한 생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돼 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숫자로나 교회의 크기로도 그때보다 수십 배 더 확장되었지만 새 생명의 유기체로 이루어진 주님의 한 몸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이 말하듯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고전12:27)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말씀과 그 인격으로 교회가 건축되어 확장되는 것이지 결코 조직이나 제도, 교리나 의식, 형식이 근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구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외형상으로의 특징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교회를 설립한다는 목표가 없었고, 단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이끌려 갈망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순수하게 모였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나 모양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모여서 말씀을 듣고 자유롭게 간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의 전부였습니다. 때론 어떤 것들이 도입되었지만 교회 흐름에 적합하지 않았는지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매번 주님께 맡기면서 주님이 인도하실 것을 바랐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 터 위에서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습니다.
대구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됩니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누구라도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경비는 처음부터 크게 경제적 부담 없이 시작했습니다. 20평 정도의 작은 집회장소와 전기료가 전부였으니 크게 문제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몇 사람 되지 않았을 때는 한두 형제자매의 헌신으로 교회가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당시 함께 간사를 하시다 그만두고 나와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던 이재승 형제 집에 거하심으로 별다른 지출이 없었습니다. 목회 수고료를 한 푼도 드릴 수 없었지만 그때는 누구도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목사님 사모님이 제천에서 양장점을 하시는 관계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대구에서의 복음사역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집회장소를 열 번 정도 옮겨야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을 준비해 주셨고, 항상 우리의 필요 이상으로 주님께서 채워주셨으며, 언제나 교회집회 장소를 순조롭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와 의식에 따른 헌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교회 안에는 헌금함이 없었고, 또 목사님의 메시지에서도 헌금을 내라 마라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물질은 가장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것을 바치려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이 합당하지만 형제자매들에게 타의적 믿음과 헌신을 요구하며 헌금을 하라는 것은 올바른 헌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물은 지극히 기쁜 마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필요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일도 사람이 먼저 되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고, 헌금도 먼저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되어야 그 사람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오직 복음의 씨만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결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유일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뿐입니다. 이 일은 돈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일이 없으니 돈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헌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교회의 경제적 필요가 생기면 그때그때마다 자신을 드려서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이 나서서 해결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헌금과 자원봉사로 교회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오늘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초기 교회멤버는 어떻게 구성되었습니까?
처음에는 대구에 있는 대학생들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예상치 않게 춘천, 충주, 울산에 있는 학생(사람)들이 대구로 몰려왔습니다. 충주는 목사님께서 대구 C.C.C로 오시기 전 부임지였던 관계로 말씀과 그 인격을 못 잊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춘천에서 온 형제자매들은 전혀 예측하지 않은 입성이었습니다. 1976년 심천(미루나무) 전국 C.C.C 순장기도회에 참석해서 당시 설교하시기로 예정된 윤두혁 목사님이 참석을 못하신 관계로 급히 이현래 목사님에게 대신 메시지를 부탁했습니다. 당시 전국 대학에서 순장 200여 명이 모였는데 미루나무 숲에서 신약 쪽복음을 들고 요한복음을 짧게(10분 미만)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빛을 받은 춘천 C.C.C 형제자매들이 돌아가서 교제하던 중에 큰 계시가 왔던 모양입니다. 이들의 표어대로 “생명은 자란다.”는 그 말씀에 꽂혀서 십여 명의 학생들이 대구로 달려왔습니다. 그 후 1992년 울진에서 여름집회를 했는데 한 형제가 집회보다는 낚시를 하려고 참석했다가 큰 빛을 보고 고꾸라져 돌아가서 그의 직장인 현대중공업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울산의 형제자매들이 교회에 합류하였습니다. 이 사건도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대구교회라는 이름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대구교회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바울은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고전1:2), 그리스도의 몸(고전12:27)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본질에 적합한 이름을 찾다가 그 지역 이름을 딴 명칭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를 말하면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하면서 그 지역의 이름을 교회의 이름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의미와 특색이 없는 지역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특별한 주장이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아담 안에 있는 옛 인류(죄인)를 끝내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새 인류(의인)를 시작하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 안에서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와 함께 이미 끝났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새 생명의 주가 되셨음으로(행3:15) 그를 생명의 주(창시자)로 믿고 영접하면 누구나 그 안에서 새 인류로 태아난다는 것입니다(고후5:17).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난 사람은 옛 생명과 옛 세상을 가져왔던 아담의 뒤를 따라 행할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의 주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기 위하여(롬6:4) 그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체로서 연합하여 새 인류로 건축되고, 마침내 최종목표인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현래 목사님의 40년 사역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인류를 끝내시려고 아들을 보내셨고, 또 새 인류를 위해서 아들을 다시 살려 새 생명의 주로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며,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심은 아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고,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신 것은 성령(그 영)의 교통하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고후13:13)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6. 5. 5.